드라마

직장인 대공감? 결국, 미생은 판타지 드라마다

  • 한은경
기사입력 2014.12.17 10:53
TV 속의 세상은 현실 세상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현실을 잊기도 하지만 현실을 위로받기도 한다. 한때 바보 상자라고 불리기도 했던 TV 프로그램에서 사람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 가히 올해의 드라마라 꼽을 수 있는 ‘미생’의 반응은 2회만을 남겨두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뜨겁다. 본격 직장생활을 그린 드라마이기에 직장인들의 공감과 반응이 가장 뜨겁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생’ 역시 재벌 2세가 등장하고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들처럼 현실의 탈을 뒤집어쓴 판타지물에 불과하다.

    고졸이 낙하산으로 대기업 인턴 입사가 가능한가

    주인공인 장그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지인의 추천으로 인턴 입사를 했다. 물론 계약직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 아무런 배경도 없는 사람이 낙하산으로 입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인사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장그래는 지독하게 운이 좋았던 건가, 혹은 드라마이기에 가능했던 건가?

    주인공들의 비현실적인 외모

    남성 직장인들이 소리 높여 “우리 회사에는 강소라 같은 여직원이 없다”고 말하면, 여성 직장인들은 “우리 회사에도 장백기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장백기나 강대리 같은 몸짱 직장인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직장인 대부분은 책상에 오래 앉아 있고, 별도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어려우며, 회식 혹은 야근 중 야식으로 배둘레햄을 달고 산다. 김대리야말로 친숙한 이 시대 30대 직장인의 모습이 아닐는지.

    계약직 사원까지 끌어안는 가족 같은 팀

    말은 거칠게 하지만 팀원을 위해 발로 뛰는 아빠 같은 오차장. 그리고 후임을 살뜰하게 챙기는 엄마 같은 김대리. 직원들은 “우리 회사에는 저런 상사는 없다”고 툴툴거리고 팀장들은 “장그래 같은 직원들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같은 팀의 계약직 사원이 정직원이 되는 걸 바라기는 해도 그 사람의 정직원 전환을 위해서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는 가족 같은 팀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 언제나 “허허허” 너그러운 임원진들



    유독 미생 속에 등장하는 임원진들은 참으로 너그럽다. 인턴 PT 때 현장의 중요성을 피력할 때도, 을 업체와의 관계에서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며 날개 단 박대리 앞에서도, 내부 고발 이후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요르단 PT에서도. “젊을 때의 내가 생각나는 군, 허허허~” “우리 회사지~ 허허허” 이런 식의 낭만적인 결론을 내리는 임원진들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될는지.



    내부 고발, 그 후



    드라마에서도 심각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박과장의 요르단 중고차 사업 비리를 파헤치는 방식의 내부 고발은 직장 내에서 흔히 벌어지지는 않는 일이다. 암암리에 덮거나 넘어가고 오히려 파헤쳐졌을 때 고발자의 지위가 불안정해지기 십상이다. 그에 더해 이제는 상급자인 전무의 비리까지 추적하는 영업 3팀. 영업팀이 아닌 감사팀이라 생각될 정도로 위험하고 도전적이다. 그 주축이 되는 오차장 같은 성품의 인물은 역시 대기업에서 오래 살아남기는 힘들다.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현실적이라기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미생. 그렇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 아닐는지.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드라마를 보면서 현실을 잊거나 혹은 위로받기 위해서다. 현실은 퍽퍽하고 직장생활은 힘들다. 현실적인 면을 보여주는 디테일에는 공감하고, 판타지적인 성과에서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미생’. 올 한 해를 열심히 달려온 직장인들에게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것 같아 고맙다.  

  • 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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