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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문화축전' 조선왕실의 영광과 아픔이 담긴 4대궁 둘러보기

기사입력 2014.12.09 16:39
  • 지난 9월, 문화재청에서 주최한 가을축제 '2014년 궁중문화축전'이 '오늘, 宮(궁)을 만나다'라는 제목 아래 4대궁과 종묘에서 열렸다. 축제에는 야간개장, 전시관, 종묘제례악 야간 개장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져 많은 시민들이 찾았다. 조선왕조의 영광과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4대궁은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이에 있다. 광화문 경복궁을 중심으로 도보로 30분~1시간 이내에 나머지 궁궐도 모두 찾아갈 수 있다.
  • 조선고궁 위치도. 출처: 조선고궁 홈페이지
    ▲ 조선고궁 위치도. 출처: 조선고궁 홈페이지
    ◇ 조선왕조의 법궁, 경복궁
     
    정도전 '큰 복을 누리라'는 뜻으로 작명
    이름과 달리 임진왜란, 일제강점기에 큰 수모 겪어
  • 경복궁 근정전. 출처: 위키피디아
    ▲ 경복궁 근정전. 출처: 위키피디아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법궁이다. 법궁은 임금이 사는 궁궐을 의미하는 것으로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창건하였다. 개국공신 정도전은 '큰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경복궁의 이름을 지었고, 경복궁 내 모든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경복궁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시절에 큰 수모를 겪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창덕궁, 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없어졌었고, 선조가 전쟁이 끝난 직후 경복궁 중건을 논의했으나 공사 비용, 인력 등의 문제로 그 후 270여년간 폐허로 남아있었다.
     
    1867년 고종 때, 흥성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경복궁을 예전보다 훨씬 더 크고 아름답게 재건했다. 이성계가 처음 지었을 때 390여칸이었던 경복궁 건물을 7200여칸으로 늘렸다. 그러나 1910년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다시 한번 경복궁은 그 모습을 잃고 말았다. 경복궁의 크기를 10분의 1로 줄이는가 하면 일반 전시회를 이 곳에서 열었고, 경복궁 맨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워 경복궁의 권위를 없애고자 했다. 이처럼 민족 수난의 역사를 함께한 경복궁은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선대원군이 지었던 경복궁의 모습을 복원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 1995년 철거되기 전 조선총독부 건물. 출처: 위키피디아
    ▲ 1995년 철거되기 전 조선총독부 건물. 출처: 위키피디아
    이번 축제에서 경복궁 야간개장은 없지만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상설 전시관을 운영 중이고, 매일 오후 7시에는 광화문 전통놀음을 즐길 수 있다. 수문장 교대의식, 주요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전통 도자 전시 등 볼거리도 많다. (경복궁 홈페이지: http://www.royalpalace.go.kr/)

    ◇ 조선왕조의 이궁, 창덕궁
     
    창덕궁은 태종 5년 조선왕조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고도 부르는 이 궁 역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일부 소실되었다. 선조가 경복궁 대신 창덕궁을 복구하기 시작해 광해군 때 중건이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인조반정 등 여러 건의 크고 작은 화재가 일어나 소실, 복구를 반복했다.
     
    돈화문에서 출발해 진선문, 인정전, 낙선재, 부용지, 불로문, 연경당을 거쳐 후원 숲길까지 거닐며 볼 수 있는 창덕궁의 운치는 특히, 매년 가을 진행하고 있는 '창덕궁 달빛기행'의 밤 풍경 때 단연 최고다. 이번 축제 때는 창경궁, 덕수궁만 야간개장을 실시하지만 조만간 또 진행될 창덕궁 달빛기행도 경험해보면 좋겠다.
     
    북한산 매봉 기슭에 세운 창덕궁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나무가 유난히 많다. 창덕궁 후원에는 조선시대의 뛰어난 조경 양식을 볼 수 있는 부용정이 있고, 160여종의 나무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300년이 넘는 나무도 있다. 그리고 창덕궁은 현재 남아있는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
  • 창덕궁 달빛기행. 출처: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 창덕궁 달빛기행. 출처: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제공
    ◇ 왕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창경궁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번째로 지어진 창경궁은 왕실 가족이 늘어나 궁궐이 비좁아져 왕실의 웃어른들을 편하게 모시기 위해 성종 때 지었다. 애초에 궁궐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서 다른 궁궐과 비교할 때 규모나 배치가 다르다. 전각의 수가 많지 않고 규모가 작으며 언덕이나 평지를 따라 터를 잡아 배치가 자유롭고 동향으로 지어졌다.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진 터라 내전이 더 넓게 지어졌고, 왕비와 후궁 등 왕실 가족이 많이 거처하던 곳이라 왕실 가족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진다. 장희빈과 인형왕후, 사도제사 등의 사건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하다.
  • 창경궁 명정전. 출처: 위키피디아
    ▲ 창경궁 명정전. 출처: 위키피디아
    궁중문화축전 중에 창경궁은 야간개방을 하고 있다. 창경궁 함인정 일원에서는 국악독주회가 열리고, 통명전에서는 그림자극, 춘당지에서는 창경궁 소리풍경이 열려 볼거리가 풍성하다. (창경궁 홈페이지: http://cgg.cha.go.kr/ )
     
    ◇ 구한말, 한국근대사가 담긴 덕수궁
     
    덕수궁이 처음 궁궐로 사용된 것은 임진왜란 후 경복궁 소실로 인해 선조가 월산대군의 집이었던 이 곳에 머물면서부터다. 후에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경운궁이라 이름 붙였고, 조선말기 고종이 이 곳으로 옮기면서 잠시 궁궐로 사용되었다. 일제로부터 벗어나고자 고종이 지금의 정동과 시청 앞까지 이르는 규모로 경운궁 전각들을 다시 세웠지만 결국 좌절되고 고종은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경운궁이 덕수궁이 된 것은 고종 폐위후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의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라는 궁호를 올린 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다. 석조전과 같은 서양식 석조 궁전을 건립한 것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 대한제국의 위용을 세우고자 한 고종의 뜻이 있었다. 하지만 덕수궁은 고종 승하 이후 일제에 의해 축소되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일제의 강압으로 순종에게 양위한 곳이 이 곳 덕수궁이기에 굴욕의 역사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은 상시 야간개장을 하고 있고, 축제기간 동안 다른 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덕수궁 홈페이지: http://www.deoksugung.go.kr/)
     
    조선왕실의 영광과 아픔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궁궐
     
    4대궁 외에도 경희궁, 운현궁, 종묘 등 서울에는 조선 왕조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유적지가 많다. 그 곳에는 어쩌면 조선왕조의 영광보다는 아픔의 역사가 더 담긴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궁중문화축전을 통해 조선 궁궐에 나타난 조선의 건축미와 문화재청에 준비한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야간 조명 속에서 볼 수 있는 궁의 아름다움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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