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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 그의 발자취 따라 떠나는 소팔가자 순례여행

기사입력 2014.12.09 16:11
'순교자의 고향'으로 불리는 솔뫼성지
중국 길림성의 장춘 서북 쪽의 교우촌 소팔가자
허룽진과 소팔가자를 잇는 김대건로(金大建路)
  • '솔뫼성지'의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 (자료제공: 솔뫼성지 제공)
    ▲ '솔뫼성지'의 김대건 신부의 생가터 (자료제공: 솔뫼성지 제공)

    26세의 나이로 순교한 김대건 신부가 머물던 한국의 ‘솔뫼성지’와 중국의 ‘소팔가자’에 순례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방문하여 다시 한번 관심을 받고 있는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1821~1846)의 탄생지로 유명한 순교지이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순교자의 고향’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이라는 의미를 지닌 솔뫼는 충청도 내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은 1784년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천주교 문화 등이 접해지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 소팔가자 성당과 김대건 신부 동상 (자료제공: 좋은사람투어)
    ▲ 소팔가자 성당과 김대건 신부 동상 (자료제공: 좋은사람투어)
    김대건 신부는 25세가 되는 1845년에 중국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는다. 그가 사제를 받기 전 그가 부제로 서품을 받은 곳은 길림성의 장춘 서북 쪽에 위치한 소팔가자(小八家子). 소팔가자는 여덟 가구가 모여서 한 마을을 이루었다는 데서 유래가 된 마을 이름으로, 현재 이곳의 95% 주민이 가톨릭 신자로 구성되어 있는 중국 전통적인 교우촌이다.
  • 김대건로(자료제공: 좋은사람투어)
    ▲ 김대건로(자료제공: 좋은사람투어)
    또한, 허룽진과 소팔가자 성당을 잇는 9.7㎞ 구간은 1999년에 ‘김대건로’라고 명명하면서 도로를 재정비하여 소팔가자 성당을 찾는 신자들의 순례길에 의미를 더 하고 있다. 길에 위인의 이름 붙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당국도 ‘김대건로’ 만큼은 허용해주고, 공사 당시에 허룽진 인민정부가 공사비도 일부 부담하기도 했다. 또한, 소팔가자에는 ‘김대건 동상’과 한국 신자들의 모금으로 건립한 ‘김대건 기념관’도 있다. 그 기념관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유품도 볼 수 있다.
  • 김대건기념관에서 바라본 소팔가자성당 종탑 (자료제공: 좋은사람투어)
    ▲ 김대건기념관에서 바라본 소팔가자성당 종탑 (자료제공: 좋은사람투어)

    5년째 한국 순례단을 안내하고 있는 ‘좋은사람투어’의 안명환 상무는 "김대건로를 지나 소팔가자에 도착하면, 여행객들은 타국에 김대건 신부의 숨결이 살아있는 성지가 있다는 사실에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라며 성지순례를 하는 여행객들의 감격의 순간을 전하기도 했다.

    신학뿐 아니라 중국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등 어학에도 능숙했던 김대건 신부. 그의 박학다식함을 알게 된 조선의 대신들이 배교를 유도하였지만, 외국인들과 접촉했다는 사실만으로 결국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에 처해져 짧은 생을 마감했다.



    솔뫼성지, 소팔가자, 김대건로 등에서 활동하며 젊은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정신과 신앙은 1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순례여행객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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