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인연과 행운이 함께했던 밀라노 <1편>

  • 글,사진 성남용
기사입력 2014.12.09 10:14
사악교주의 횡설수설 여행이야기
  • 이른 아침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베네치아의 곤돌라 민박집에서 만나 함께 다녔던 학생 두 명과 함께였다. 그 중 한 명은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로 향하는 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밀라노에서 하루를 보낸 후 내일 아침 공부 중인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고작 하루 남짓 함께 보냈을 뿐이지만, 이미 오래 알던 사람들처럼 친해진 터였다. 함께한 시간이나 각각의 나이에 관계없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여행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일 것이다.

    밀라노 역에 도착해서 한 친구를 스위스 행 열차에 다시 태워 보냈다.
    그리고 남은 두 명은 오늘의 첫 번째 과제인 숙소 구하기를 시작했다. 둘 다 밀라노의 숙소는 정해 놓지 않은 상태였다. 우선 각자 점 찍어 놓은 숙소를 비교하기로 했다.

  • 그 친구가 가려던 곳은 밀라노의 한인 민박 중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곳으로 기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20여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내가 알아 본 곳은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민박집으로 조선족이 하는 곳인 듯 했고, 기차역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공항으로 가야 했던 그 친구의 사정상 공항 행 버스 정류장이 있는 기차역 근처의 민박집으로 마음을 정하고 자세한 위치를 알아보기로 했다.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무선인터넷이 잡히는지 찾아본다. 잡힌다. 일단 인터넷이 되니 구글어스에 접속해 민박집 주소를 입력하고 위치를 살펴본다. 위성사진 위에 표시된 민박집 위치는 기차역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였다. 밀라노 숙소 확정. 민박집에 전화를 했다. 방은 있었고, 기차역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째에 위치하고 있으니 근처에 와서 전화를 하면 데리러 나오겠다고 한다.
  • 위성 사진 속의 위치를 떠올려가며 걸음을 옮긴다. 느린 걸음으로 10분이 채 안되어 민박집 인근의 지하철역이 나온다. 예상대로 가까운 위치여서 마음이 놓였다. 민박집에 전화를 하니 몇 분 후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보이며 주인아저씨가 왔다. 짐작대로 조선족 분.

    만난 장소에서 2분쯤 걸어가니 평범한 건물이 나왔고 민박집은 그 건물 2층이었다.
    안내된 남자용 도미토리룸은 텅 비어 있었다. 짐을 풀고, 물 한잔 마시며 잠시 쉬고 있을 때 주인 아저씨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준다.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지만 주인아저씨는 많은 손님을 겪은 듯 조금은 기계적인 듯한 안내를 한다. 밀라노는 어디어디가 볼만하고, 어떻게 가야 하고, 근교에는 어떤 명품 아울렛이 있는데 여기는 또 어떻게 가야 하는지 등등.

    그러다가 우리가 베네치아에서 왔고, 거기서는 곤돌라 민박집에 머물렀었다고 하자, 자신도 베네치아에서 민박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얘기를 한다. 또한 그 전에는 피렌체에서 민박집을 했었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주인 아저씨의 인상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싶어서 피렌체에서 했던 민박집 이름을 물어보니.
    아뿔싸.
    재작년 가을 피렌체에 갔었을 때 머물렀던 민박집의 아저씨가 바로 지금 밀라노의 이 분이었다.
    물론 많은 손님을 접하는 그 분은 잠시 머물렀던 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런 저런 그때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깜짝 놀라며 반가워 한다.

    참 좁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도 몇 년을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야 하는 이태리 땅에서 우연치 않게 봤던 사람을 다시 보게 되니, 그저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할 정도의 사이면서도 반가움이 제법 크게 다가온다.

  •  시내 관광을 위해 나가려 하자 주인 아저씨는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한다.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같이 온 친구에게 물으니 삼겹살이란다. 그렇게 저녁 메뉴를 삼겹살로 정해 놓고 서둘러 민박집을 나섰다.

    민박집에서 중앙역까지 걸어와 역 근처의 공항 버스 정거장으로 향했다. 내일 아침 이른 시간 버스를 타야 하는 동행자 탓에 정거장과 버스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공항 버스 티켓까지 미리 구입한 후 지하철을 타고 향한 곳은 밀라노의 핵심 명소 ‘두오모’.

    피렌체에도 두오모가 있었고, 이곳 밀라노에도 두오모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태리 곳곳에 두오모가 있다. 두오모란 원래 돔에서 유래된 말로 이태리에서는 ‘대성당’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여행자들은 피렌체의 두오모는 커다란 돔이 있어서 두오모가 돔을 의미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밀라노의 두오모는 삐죽 삐죽한 고딕양식의 건물인 탓에 두오모가 아닌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  뜨거운 밀라노의 햇살아래 두오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밀라노 한 복판에 자리잡은 두오모는 규모 면에서 일단 사람들을 압도한다.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 그리고 쾰른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할 뿐 아니라, 3천 개가 넘는 조각상들 그리고 내부의 화려하고 정교한 스테인드 글라스는 보는 이들에게 감탄사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오래 전 밀라노에 왔을 때는 공사 중이었던 탓에 제대로 된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이번에는 온전히 그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기에 더욱 만족스러웠다.
    동행한 친구가 성당 위로 올라가 보겠다고 하여 그러라고 하고, 그 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  두오모 대성당 옆에서 시작하여 스칼라 극장이 있는 스칼라 극장까지는 거대한 아케이드가 연결되어 있다. 19세기 밀라노의 대표적인 건축물이기도 한 이 아케이드가 바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2세 갤러리아이다. 아치형 지붕은 유럽의 어느 아케이드보다 높고 화려하고, 양쪽으로 늘어선 상점들 또한 브랜드에서 인테리어에서 화려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  구찌(Gucci), 프라다(Prada), 루비뷔통(Louis Vuitton) 등 명품 브랜드의 숍들은 당연히 그 호사스러움을 인테리어에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고, 특히 재미있는 것은 대중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널드 조차도 이 곳에서는 마치 명품 브랜드의 숍처럼 검정색과 금색을 사용한 럭셔리한 느낌의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다른 맥도널드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맥도널드 뿐만 아니라 이 아케이드 안의 모든 상점들이 검정색과 금색을 사용하여 외관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 원짜리 햄버거를 파는 가게나, 백만 원이 넘는 가방을 파는 가게나 예외가 없이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검정색과 금색은 이를 테면 이곳의 드레스 코드였던 것이다.

  •  웅장한 아케이드를 빠져 나오자 작은 광장이 나타났다. 바로 스칼라 광장이다. 광장 가운데는 둥근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남자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조각상으로 다빈치 주위를 둘러싼 네 개의 조각상은 그의 제자들이라고 한다.

    광장 길 건너 편에는 평범한 건물 한 채가 서있다. 유럽의 어느 도시, 어느 거리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것 같은 흔한 외관의 건물이지만, 이곳이 바로 유럽 오페라계를 좌지우지 한다는 스칼라 극장이다. 건물은 2차 대전 중에 파손되어 1946년 다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수미씨나 김동규씨도 이곳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고 하니 왠지 더욱 친숙하게 다가 온다.

  •  스칼라 광장을 보고 다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를 거쳐 두오모로 돌아왔다.
    그런데 조금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케이드와 두오모 사이에 갑작스레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현지의 젊은이들로, 자세히 보니 무언가 적어 놓은 종이나 피켓을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혹시 UFO라도 나타났나 싶기도 할 정도였다.
    호기심이 커지면서 이유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유를 알게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아케이드 위층의 테라스쯤에서 현지의 인기 연예인이 방송 촬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어디선가 몰려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 밀라노의 젊은이들이 소위 ‘오빠부대’였음을 알 수 있었다.
  •  그들은 연예인이 얼굴 한번 내밀어 주거나, 손 한번 흔들어주면 괴성을 질러대며 좋아라 했다. 가끔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는 우리나라의 오빠부대와 다름이 없었다. 그 또래에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한국이건 이태리건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별 것 없는 이유를 알고 보니 실망스럽다. 아마도 정말 UFO라도 봤었으면 싶었었나 보다.
    다시 동행자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 글,사진 성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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