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의 세상은 현실 세상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현실을 잊기도 하지만 현실을 위로받기도 한다.
한때 바보 상자라고 불리기도 했던 TV 프로그램에서 사람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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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케이블 채널 tvN이 단단히 벼르긴 벼른 모양이다. tvN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와 예능 모두 호평을 받고 있는데 그 중 마음을 끄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나영석 PD의 '삼시세끼'다. 나영석 PD는 유명한 '꽃할배' 시리즈의 PD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뻘 연예인들이 배낭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뭐가 재밌겠느냐고 했었지만, 결국 대박이 나지 않았던가. 새로 요리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기에 망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느새 매회 열심히 챙겨보게 되는 것이다.
삼시세끼는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를 표방하는 프로그램이다. 츤데레의 대명사 이서진(툴툴거리고 입으로는 까칠하지만 뭔가 했다 하면 잘하는 남자)과 짐승돌 2PM의 멤버 옥택연(열심히는 하지만 어딘지 많이 부족한듯한) 두 사람이 시골에서 그저 삼시세끼 밥을 해 먹는 예능이다. 도시 생활에 질린 사람들, 그리고 귀농을 꿈꾸고 있는 많은 사람이 시골에서의 삶이 어떤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프로이기도 하다.
이서진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프로는 망했어"라는 말처럼, 콘셉트만 보면 뭐가 재미있을까 싶은데 웬걸, 이거 은근히 재미있다. '삼시세끼'에는 빵빵 터지는 큼직한 일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시종일관 미소를 띠고 시청하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삼시세끼, 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
초보 농부의 어리바리한 실수담
시골 생활이라고는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황할만한 일들. 요즘이야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으로 검색해가면서 방법을 찾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서투를 수밖에 없는 것이 농사 아닐까. 뿌리를 먹는 달래의 잎만 따서 찌개에 넣는 건 애교다. 사실 늘 먹던 채소 이외의 비슷비슷해 보이는 잎사귀들을 보면서 뭐가 뭔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출연자들이 어쩔 수 없이 어리바리해지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 공감이 가면서도 재미있다. 귀엽기도 하고.
생활형 기발한 아이디어들
사람은 어떤 환경에든 떨궈지면 어떻게든 살아남게 되어 있다. 이 두 사람도 낯설고 아무것도 없는 이 시골에서 나름대로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간다. 그것이 맷돌로 갈아 버리는 드립 커피일 수도 있고 냇물에 만들어 놓은 냉장고일 수도 있지만… 뭔가 그런 것들을 하나씩 장만해나가는 것을 보며 왠지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도시에 살면서 내가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 나가는 생활을 거의 경험하기 힘들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그런 삶과는 정반대의, 조금은 느리고 불편한 생활이 보여주는 묘한 쾌감이 있다. -
가축과 먹거리의 소중함
‘엘리자베스, 마틸다..’ 평범한 가축에게 붙여진 생뚱맞기 짝이 없는 작명 센스. 시골에서는 닭, 염소 같은 가축들이 식재료를 제공해주는 고마운 반려동물들이었다. "쟤네 나한테 치킨이야, 치킨!"이라고 툴툴대지만 닭이 낳아주는 계란의 고마움, 염소에게서 얻어지는 젖의 고마움이 마음으로 와 닿는다. 마트에서 포장되어 있는 제품으로 구매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식재료 하나하나에 대한 소중함. 더불어 밥 한끼 한끼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다. 의식하지 않고 때 되면 먹었던 밥상, 누군가가 차려주는 밥상에 담긴 고민과 그 고마움까지도 생각해보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이서진, 옥택연과 게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나영석
하지만 결국 이 프로그램은 나영석 피디가 만들지 않고 이서진과 옥택연이라는 멤버가 아니었다면 재미가 없는 다큐 같은 예능이 되었을 것이다. 나영석 피디와 최고의 콤비인 이서진. 까칠하고 시니컬한 이서진의 말투는 이 프로그램의 최고의 양념이다. 말로는 그러면서도 뭐든 척척 해내니 반전 매력이 넘쳐 흐른다. 삼시세끼 이전까지는 예능에서 좀처럼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옥택연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호감 캐릭터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이것은 나영석 PD의 포장기술 덕이다.
그런걸 보면 나영석 피디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그저 백일섭과 신구 선생님을 어려워하고 노력하는 택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했다면 지루한 다큐가 되었을텐데, 노예니 곱추니 하면서 캐릭터로 덧씌워 재미를 창조해낸다. 매주 다양한 게스트의 방문은 그들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게스트에 따라 달라지는 그들의 태도를 잡아내는 나영석 피디의 관찰력 또한 그야말로 탁월하다.
삼시세끼를 보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좀 느리고, 서툴고, 불편하지만 어딘지 사람냄새가 나는 따뜻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게 된다. 현실이 삭막해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물론 이 역시 판타지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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